경영 컨설턴트였던 안토니오 카치아토레는 2006년, 예술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 시드니 국립예술학교(Sydney National Art School)에서 조형 예술을 공부했다. 이후 파리에서 잉그리드 디슬러(Ingrid Distler)의 아틀리에와 멕시코 화가 프란시스코 랑겔(Francisco Rangel)에게서 배움을 이어가다가 현재 자신의 미술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2021년 말, 안토니오 카치아토레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그의 그림에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다. 처음에 빛을 다루는 그의 방식과 일부 색 표현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영화적인 분위기가 떠올랐다면, 이어서 우리를 사로잡은 것 역시 영화적인 요소인 일종의 ‘서스펜스’였다. 여기서 서스펜스란 풀어야 할 수수께끼, 즉 미스테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간이 정지된 듯한 순간을 뜻하기도 한다. 아직 발을 들여놓지 않은 미지의 세계, 그 낯선 땅에 첫 발을 내딛기 직전,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바로 그 순간 말이다.
이탈리아 이민자의 후손인 안토니오 카치아토레는 이주라는 주제, 특히 이주가 언제나 수반하는 내면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측면에 이끌린다. 지리적으로 한곳에 머물러 산다 해도 우리는 본질적으로 유목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의 작품이 포착하는 것은 흔히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바로 그 순간들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이러한 “이주자들”이 불러일으키는 기억의 문제를 탐구한다. 우리가 떠나온 곳에 남겨두는 것과 새로운 곳에 가져가는 것, 물질적이든 유전적이든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는 것, 그리고 집단 기억을 통해 우리 존재에 깊이 새겨지는 것들에 관한 질문이다.
안토니오 카치아토레 회화의 보편성은 바로 그의 그림 한 점 한 점에 담겨 있는 이러한 수수께끼 안에 들어 있다.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해석이 완전히 닿지 않는 어떤 빈틈, 또는 채워지지 않는 공백이 존재하는데, 이 공백은 관람자인 우리가 그의 작품 속에 깃들 수 있도록 작가가 의도적으로 비워둔 자리다. 작가가 때로 현실에서 가져온 가공되지 않은 재료를 작품에 사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 재료가 일종의 다리가 되어 우리를 캔버스 안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이 그림 속 세계 안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면서 작품의 수수께끼를 채워나가게 된다. 언젠가 우리 자신도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했던, 우리 각자의 삶 속에 존재하는 수수께끼들을 통해서 말이다.